입력2025.01.28. 오전 8:00
웨스팅하우스가 개발 중인 마이크로 원자로인 '이빈치'. 웨스팅하우스 제공
미국 원자력발전 기업 웨스팅하우스가 개발 중인 마이크로 원자로 ‘이빈치(eVinci)’의 상용화가 미국 현지에서 빨라지고 있다. 소형모듈원전(SMR)보다 발전용량이 적은 원자로인 마이크로 원자로는 탄소 제로 에너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우주·극지 등 극한환경에서의 전력 생산이 필요해지면서 주목받고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달 미국 원자력 규제 위원회(NRC)로부터 5메가와트(㎿) 이빈치를 원격 운영할 수 있는 제어 시스템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NRC 승인을 받은 미국 최초의 마이크로 원자로다.
마이크로 원자로를 SMR의 하나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 SMR보다 원자로 크기가 작은 초소형 원자로다. SMR은 300메가와트(㎿) 이하의 출력을 내는 소형 원전, 마이크로 원자로는 10㎿ 이하의 출력을 내는 원자로를 말한다. 기존 대형 원전의 전기 출력이 1000~1500㎿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규모다.
SMR은 건설기간이 짧으며 기존 원자로와 비교했을 때 필요한 부대설비가 적은 것이 큰 장점이다. 대형 원전은 출력량은 높지만 보통 원자로 냉각에 해수가 필요해 건설 위치가 바닷가로 제한된다. SMR은 해수가 아닌 자연 대류 현상을 이용해 원자로를 식히기 때문에 수요지 근처에 건립할 수 있다.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전하기도 하다. 원자로 사고 대부분은 핵심 장비들을 연결하는 파이프에서 누수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며 냉각수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발생한다. SMR은 핵심 장비가 일체형으로 연결돼 안전성이 높다.
또 대형 원전보다 '부하추종 운전'이 쉬워 재생에너지와 연계해 전력을 생산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부하추종 운전이란 원전의 발전량을 전력수요에 맞춰 변동시킬 수 있는 운전을 말한다. 풍력, 태양광 발전 등 재생에너지는 기상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전력량의 변동성이 크다. 원전은 재생에너지의 들쭉날쭉한 발전량을 보완해줄 수 있는 수단이다. SMR은 대형 원자로에 비해 부하추종 운전이 더 쉽다.
마이크로 원자로는 SMR의 장점이 극대화된 원자로다. 마이크로 원자로는 보통 '히트파이프' 원자로다. 노심에 히트파이프를 설치해 노심에서 일어나는 핵분열 열을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로 이동시킨다. 이빈치도 비슷한 원리로 작동된다. 이빈치는 액체 나트륨을 채운 파이프를 이용해 핵분열 열을 주변 공기로 이동시킨다. 그런 다음 터빈을 가동해 전기를 발생시킨다.
마이크로 원자로는 특수 업무를 위한 전력 생산 필요성이 커지면서 최근 주목받고 있다. 강한옥 한국원자력연구원(원자력연) SMART개발단장은 "마이크로 원자로는 SMR보다 크기가 매우 작아 조립이 거의 완료된 상태로 트럭을 이용해 운반한 후 해당 지역에서 신속하게 활용할 수 있다"면서 "SMR조차 설치하기 힘든 우주·극지 등 극한환경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필요한 곳 어디서든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빈치도 트레일러·기차·배 등의 일반적인 운송 수단으로 옮겨 현장에서 간단히 조립해 설치할 수 있다.
강 단장은 "알래스카 등 극지는 전력 생산을 위해 필요한 디젤을 얼지 않게 가져가려면 과정이 까다로워서 전기료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연료 비용이 저렴하고 한 번 설치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마이크로 원자로가 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주 탐사가 일상화 되면 마이크로 원자로의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우주선에 실어 보낼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벼운 데다 태양이 비치지 않는 밤에는 전력을 생산할 수 없는 태양광 발전보다 안정적으로 전력을 만들 수 있다.
2018년 5월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ANL)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우주용 마이크로 원자로 개발에 성공했다. 개발된 마이크로 원자로는 10킬로와트(㎾) 전기를 생산하는 모델의 경우 노심이 지름 11㎝, 높이가 25㎝로 매우 작다. NASA는 2028년 달에 초소형 원자로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마이크로 원자로는 사막, 산속 등 전기차 충전소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재난, 전쟁 등이 발생한 긴급 상황에서 마이크로 원자로가 어디서든 전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강 단장은 "현재 마이크로 원자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연구되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는 원자력연을 중심으로 마이크로 원자로의 개념 설계 연구만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이 원전 기술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우수한 마이크로 원자로를 빠른 시일 내에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